어쩌면 신문사들 상당수. 한겨레나 경향, 프레시안 등등. 그런 신문들도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내세우기 위해 점점 극단적인 기사를 써 내려간다. 아마 본인들은 절대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한겨레를 지지하고 많이 봐 왔던 1인으로써 요즘 한겨레는 경멸스러울 때도 있다. 경향 역시 마찬가지고 프레시안 또한 그렇다.
신문만 그러한가. 정치도 그렇다. 김장하이사장님이 요란한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지배한다고 하셨는데 난 거기에 한가지를 더 얹자면 요란한 소수는 결국 자기들 입장에 도취되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덤점 극단적인 목소리가 주류가 되어간다. 이럴때 중심을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지만 조용한 다수는 그럴때마저도 조용하기에 결국 시끄럽고 극단적인 소수가 대표성읠 띄게 된다.
천안함 사건 이후에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으로 어뢰에 의한 폭침이 강제되던 때를 보자. 결국 그 어느 정치인도 북한의 소행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끄러운 목소리에 찬성하게 내몰리고 결국 그 의견에 스스로를 세뇌하는 단계까지 가게 된다.
그런 때에 언론이 자극적인 쪽으로 찬성하고 나서면서 상대의 언로를 막아버리는 걸 자주 목격하게 된다.
페미니즘 문제도 마찬가지.
여성 차별을 없애자였으면 거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오히려 역차별을 조장한다. 이미 그네들이 주장하는 차별은 제도적으로 사회적으로 대부분 해소가 되었는데도 할당제 같은걸 억지로 밀어붙인다.
나는 까칠남여에서 한 패널이 남자가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로리는 범죄지만 여자가 어린 남자를 좋아하는 쇼타는 취향이라는 헛소리를 늘어놓는걸 봤다. 암자가 어린 여자아이를 보고 귀엽네 하면 범죄고 여자가 어린 남자아이를 보고 귀엽네 하면 취향인가? 가도 너무 갔다. 차별 철폐를 이야기해놓고는 왜 자신한테만 느그러운지. 차별 철폐를 이야기해놓고 왜 할당제가 필요한지.
100분 토론 이야기도 있다. 실시간으로 좋은 일자리는 남여 동수여야 하지만 나쁜 일자리는 관련없다는 이야기를 당당히 하던 여자패널.
그런 상황을 보면서 어이없기도 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이러라고 여가부를 만들었나 싶은 생각도 즐었다.
김대중이라는 거인의 그림자에 숨어서 꿀만 빨고 싶은 단체들.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사회가 겁을 내는데가 있어야 하는데 겁내는게 없으면 사회가 몰락을 한다고.
자신들의 목적을 이뤘다면, 그래서 더 이상 이룰게 없다면 단체는 해산을 해야 맞는데, 그게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 그걸 못놓고 있는 집단 혹은 단체들.
그런걸 볼때마다 역겹다.
목적을 잊지 말고 목적을 이뤘다면 해산하는게 맞다. 혹은 새로운 목적을 제시하고 싶다면, 그 목적에 맞는 과정을 거쳐라. 그 과정과 목적은 우리의 동의가 필수라는 것도.